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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나면 너희를 다 죽이겠다" 해적들은 왜 인질의 농담을 비웃었을까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도 흑역사는 있었다. 서른 살도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 그리스로 유학을 가던 길에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킬리키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인질극의 풍경은 공포와 비명, 그리고 비굴한 타협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달랐다. 그는 굴욕적인 납치 사건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기괴하고도 강렬한 '독무대'로 바꿔버렸다. 해적들이 몸값을 요구하기도 전에, 인질이 먼저 해적들에게 호통을 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 몸값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인질이 해적에게 화를 낸 이유
당시 지중해 해적들은 로마의 귀족 청년을 잡았으니 횡재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몸값으로 은화 20달란트(당시 기준으로도 제법 큰돈)를 요구했다.
그런데 금액을 들은 카이사르의 반응이 황당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불같이 화를 내며 해적들을 비웃은 것이다.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내 가치를 고작 이따위로 평가하느냐?"라며 당장 몸값을 50달란트로 올리라고 직접 요구했다.
자신의 가치가 깎이는 것을 목숨보다 싫어했던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해적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었을까. 이유야 어쨌든 인질이 스스로 몸값을 서너 배로 올리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해적들은 황당해하면서도 로마로 사람을 보냈다. 돈을 더 준다는데 마다할 해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풀려나면 십자가에 못 박아주지" 해적들은 왜 이 말을 농담으로 들었을까?
몸값이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8일. 그동안 카이사르가 섬에서 보낸 일상은 인질이라기보다는 '왕'에 가까웠다.
그는 해적들에게 "내가 시를 쓰고 연설문을 낭독할 테니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해적들이 시를 듣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무식한 야만인들"이라며 대놓고 모욕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는 해적들에게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라고 사람을 보내 경고했다.
해적들은 이 어이없고 배짱 두둑한 로마 청년을 일종의 '미친놈'이나 '재미있는 광대'로 생각했다. 카이사르는 해적들과 술을 마시며 어울릴 때마다 항상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풀려나면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너희를 전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겠다."
해적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포박당한 인질이 던지는 농담 치고는 제법 참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카이사르는 단 한 번도 농담을 한 적이 없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20대의 카이사르는 지중해 해적에게 납치당했다.
해적이 요구한 몸값이 너무 낮다며 스스로 2.5배(50달란트)로 올렸다.
38일 동안 해적들을 부하처럼 부리며 "풀려나면 다 죽이겠다"고 예고했다.
농담이 피비린내 나는 현실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
마침내 로마에서 50달란트의 은화가 도착했고, 카이사르는 풀려났다. 해적들은 공돈이 생겼다며 축제를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발걸음은 집이 아닌 가장 가까운 로마 항구(밀레투스)로 향했다.
그는 공식적인 군사 지휘권이 없는 일개 민간인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무서운 행정력과 말재주로 항구의 행정관들을 설득해 순식간에 사설 함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배를 띄워 자신이 갇혀 있던 섬으로 정확히 되돌아갔다. 풀려난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결과는 해적들의 완패였다. 술에 취해 방심하고 있던 해적들은 카이사르가 이끌고 온 군대에 처참히 짓밟혔고, 카이사르는 자신이 낸 몸값 50달란트를 고스란히 되찾았다. 생포된 해적들은 페르가몬의 감옥에 갇혔다.
현지 로마 총독이 해적들을 노예로 팔아 돈을 남기려고 꾸물거리자, 카이사르는 총독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감옥으로 찾아가 해적 전원을 끌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섬에서 예고했던 대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다만, 38일 동안 나름대로 자신을 대접해 준 것에 대한 '자비'의 표시로, 십자가에 매달기 전 먼저 목을 베어 고통을 줄여주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모욕한 자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 응징하는 냉혹한 인물이었다. 동시에 법적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도 군대를 조직해 내는 천생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해적들은 인질의 오만함을 단순한 허세로 보았지만, 그것은 훗날 로마라는 거대 제국을 집어삼킬 괴물의 진짜 발톱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잔혹하고 철저했던 카이사르가, 훗날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을 때는 왜 자신을 죽이려던 정적들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용서해 주었을까?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관용(Clementia)'은 과연 순수한 자비였을까, 아니면 해적을 몰살했을 때보다 더 잔인한 정치적 계산이었을까. 다음 글에서는 카이사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치명적인 용서의 비하인드를 다뤄보겠다.
📜 참고 기록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카이사르 편: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납치당했을 당시 몸값에 항의하고, 풀려난 뒤 사설 함대를 조직해 복수하고 십자가에 처형한 전말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음.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로마 12인 황제전): 카이사르가 해적들을 처형하기 전 '자비'의 의미로 목을 먼저 베어주었다는 구체적인 처형 방식이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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