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의 숨겨진 이야기: 전설의 '프로 레슬러'가 평화주의자 대통령이 되다

에이브러햄 링컨, 신화에 가려진 진짜 얼굴

깡마른 체구에 높은 실크햇,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흑인 노예 해방.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떠올릴 때 조건반사적으로 그려지는 ‘자애롭고 진지한 성인(聖人)’의 이미지다. 우리는 늘 우수에 찬 눈빛으로 미국의 극심한 분열을 봉합하려 했던 고뇌하는 평화주의자로 그를 기억한다. 수많은 위인전과 매체들이 그의 도덕적 우월성과 숭고한 결단만을 강조해 온 탓이다.

하지만 겹겹이 둘러쳐진 신화화된 역사의 장막을 걷어내면, 교과서가 꽁꽁 숨겨둔 링컨의 거칠고 호쾌한, 심지어 날것 그대로의 반전 인생이 속살을 드러낸다. 위대한 해방자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영웅이 아니라, 진흙탕 같은 삶의 현장에서 뒹굴며 단련된 잡초 같은 생존자였다. 구글 검색창에 흔히 나오는 위인전의 요약본이 아닌, 진짜 에이브러햄 링컨의 숨겨진 역사를 들여다보자.

에이브러햄 링컨 초상화



300전 299승의 프로 레슬러, 거친 서부 생태계를 제패하다

링컨의 청년기는 우아한 펜대나 법전보다는 거친 땀방울과 주먹이 앞서는 시간이었다. 그는 193cm의 거구에 비정상적으로 길고 단단한 팔다리를 가진 타고난 근육질 체형이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개척기 서부는 거친 자들만이 살아남는 야생과도 같았고, 링컨은 일리노이주 뉴살렘에서 약 12년간 프로 레슬러로 활약하며 이 생태계의 정점에 섰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300여 번의 경기 중 단 1패만을 기록한 그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싸움꾼이었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일화는 1831년, 마을의 악명 높은 불량배 조직 '클레리스 그로브 보이스'의 두목 잭 암스트롱과의 혈투다. 암스트롱이 먼저 시비를 걸며 시작된 이 대결에서, 사람들은 비쩍 마른 링컨이 무참히 짓밟힐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링컨은 암스트롱의 목을 맹수처럼 낚아채 가볍게 공중으로 집어 던지며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훗날 전기 작가들은 "분노한 짐승 같은 링컨의 압도적인 완력에 갱단 전체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고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결투 이후 암스트롱과 그의 패거리들이 링컨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압도적인 완력과 기질은 그가 마을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으며 초기 정치 입문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1992년 미국 국립 레슬링 명예의 전당은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링컨을 헌액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유일의 특허권자, 공학적 탐구심이 번뜩인 발명가

물론 그가 짐승 같은 근육만 앞세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링컨은 기계와 구조물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공인 발명가'이자 이과형 두뇌의 소유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화물선 뱃사공으로 일했는데, 당시 수심이 얕은 모래톱에 배가 걸려 며칠씩 꼼짝 못 하고 고생하는 일이 잦았다. 남들은 짜증만 내고 넘길 일상적 불편함이었지만 링컨은 문제를 방치하지 않았다.

그는 1849년 공기 주머니를 팽창시켜 얕은 물에서도 배를 가볍게 띄워 올릴 수 있는 '부력 장치'를 설계해 특허를 출원했다. 워싱턴 D.C.의 미국 특허청에 남아있는 특허번호 6469호 '가라앉은 배를 들어 올리는 장치'에는 링컨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정교한 모형과 상세한 기계 도면, 그리고 서명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비록 이 장치는 무게가 무거워 실제 상용화되지는 못했으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그의 집요한 공학적 탐구심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특허를 보유한 유일무이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링컨의 특허번호 6469호 '가라앉은 배를 들어 올리는 장치'



선술집 사장의 쓰라린 폐업, 빚더미에서 배운 서민의 삶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거침없는 실행력도 냉혹한 상업의 세계 앞에서는 쓴맛을 봐야 했다. 정식 변호사가 되기 전, 20대의 링컨은 친구 윌리엄 베리와 함께 '베리 앤 링컨'이라는 잡화점 겸 선술집을 창업했다. 그들은 식료품뿐만 아니라 브랜디, 진, 럼 등 독주를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정식 주류 취급 면허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동업자 베리가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링컨 본인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샌님 같은 책벌레였기 때문이다. 가게를 돌보는 대신 구석에 박혀 법률 서적만 파고들던 링컨과 매일 밤 가게 술을 거덜 내던 베리의 동업이 성공할 리 만무했다. 결국 베리가 엄청난 빚더미 속에서 돌연 사망하면서 링컨은 막대한 부채를 고스란히 떠안고 폐업해야만 했다. 링컨 스스로 훗날 이 빚을 '국가 부채'라고 농담 삼아 부를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우체국장, 측량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 서민들과 부대끼며 겪은 처절한 가난과 실패의 경험은 훗날 그가 대중의 민심을 정확히 읽어내는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가장 강력한 자양분이 되었다.

중후한 저음은 거짓? 게티스버그 연설에 얽힌 목소리의 비밀
링컨을 둘러싼 또 하나의 강력한 대중적 오해는 바로 그의 목소리다. 할리우드 영화나 역사 다큐멘터리 속 링컨은 늘 위엄 있고 중후한 바리톤의 저음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와 오랫동안 법률 사무소를 함께 운영했던 윌리엄 허던의 회고록에 기록된 생생한 증언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뒤엎는다.
허던은 링컨의 실제 목소리를 "쇳소리가 나는 듯 찢어지고 날카로운 하이톤의 테너"라고 묘사했다. 193cm 거구에서 나오는 소리치고는 지나치게 얇고 새된 소리여서 처음 듣는 이들은 당황하곤 했다. 그러나 이 다소 거슬리는 목소리는 군중 앞의 연설이 시작되면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마이크나 확성기가 없던 시절, 야외에서 수천 명을 모아놓고 하던 당시의 정치 유세 환경에서 링컨의 날카로운 금속성 목소리는 멀리 있는 군중의 귓가까지 명확하게 꽂히는 강력한 무기로 돌변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최고의 명연설로 꼽히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게티스버그 연설 역시 중후한 울림이 아니라, 이 쩌렁쩌렁한 쇳소리로 전쟁터의 하늘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책상 밖으로 나온 진짜 리더십의 가치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 해방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고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반열에 오른 것은 결코 그가 태생적인 성인군자나 온건한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흙먼지 날리는 레슬링 판과 파리 날리는 선술집, 실패한 발명의 현장을 온몸으로 누비며 좌절을 딛고 일어선 거친 생명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끈질긴 회복탄력성과 실전에서 다져진 두둑한 배짱이 훗날 남북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분열 위기 속에서 미국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진정한 리더십으로 발현된 것이다. 온화한 미소 뒤에 숨겨진 짐승 같은 완력과 책상 앞의 고뇌보다 일단 링 위로 올라가 부딪히며 배우는 거친 투지. 이것이야말로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신화를 걷어냈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역사의 비하인드이자, 인간 에이브러햄 링컨의 진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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