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칼 대신 펜을 든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생각하면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는 거친 장군이 먼저 떠오른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짧고 굵은 대사 역시 그의 군인다운 기질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쓰인다.
하지만 로마 현지에서 카이사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카이사르는 칼보다 펜을 더 무섭게 휘두르는 남자였고, 엄청난 양의 책을 집착적으로 읽어대던 지독한 다작 작가였다. 그는 피가 튀는 전장 한복판에서도 등불을 켜고 밤새 글을 쓰던 인물이었다.
"말을 타면서 동시에 책을 읽는 남자" 코끼리 군대 앞에서도 책을 펼친 배짱
카이사르의 독서벽은 병적인 수준이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자, 말등 위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통째로 독서에 투자했다. 갈리아의 거친 숲과 험난한 알프스산맥을 넘을 때도 그는 한 손에 고삐를, 다른 한 손에는 양피지 장부를 들고 글을 읽었다.
단순히 읽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서기 서너 명을 동시에 앉혀두고, 각각 다른 주제의 편지와 문서를 동시에 구술하여 받아 적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적들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도 그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기원전 4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적들에게 포위당해 불타는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를 헤엄쳐 탈출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카이사르는 한 손으로 수영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이 쓴 소중한 원고 뭉치를 물에 젖지 않게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살아남았다. 목숨보다 글이 먼저였던 셈이다.
로마 최고의 천재 문필가, 왜 그의 문장은 신하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을까?
당시 로마 귀족들은 화려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잔뜩 집어넣은 문장을 최고로 쳤다. 당대 최고의 대연설가였던 키케로의 글이 딱 그랬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문체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는 군더더기를 칼로 잘라내듯 다 걷어내고, 지극히 담백하고 명료한 문장만 썼다. 심지어 자신이 주인공인 《갈리아 전쟁기》를 쓰면서도 '내가 이렇게 했다'가 아니라 '카이사르는 이렇게 명령했다'라며 철저히 제3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사실만 기록했다.
이 담백함이 오히려 무서웠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글은 사심 없는 철저한 객관적 사실이구나"라고 믿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독설가이자 문장가였던 키케로조차 카이사르의 글을 읽고 "어떤 수사학적 장식도 다 걷어낸, 마치 벌거벗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문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카이사르는 말 위에서 책을 읽고 서기 여러 명에게 동시에 글을 받아 적게 한 독서광이었다.
알렉산드리아 바다에 빠졌을 때도 원고 뭉치를 손에 쥐고 헤어쳐 살아남았다.
제3자 화법을 쓴 명료한 문체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 키케로에게 극찬을 받았다.
전장을 누비며 수만 장의 글을 써 내려간 진짜 목적
이걸 단순히 '문학 소년' 같은 순수한 취미로 보면 카이사르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다. 그에게 다작은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가장 정교하고 치명적인 정치적 무기였다.
당시 카이사르는 로마를 오래 떠나 머나먼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일대)에서 수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로마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거둔 승리와 고난을 담담하게 적은 일종의 '전쟁 리포트'를 매년 정기적으로 로마에 보냈다.
이 글들은 로마 광장에서 낭독되었고, 시민들은 카이사르가 보낸 흥미진진한 전장 이야기에 열광했다. 자극적인 자랑 대신 "우리는 오늘 굶주렸고, 적들은 강했으나, 로마 군대는 묵묵히 버텼다" 식의 담백한 서사가 시민들의 가슴을 더 세게 울린 것이다.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자신의 펜 끝으로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정복해 두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칼로 영토를 넓혔지만, 결국 그 영토를 지배한 동력은 그가 매일 밤 피로를 이겨내며 양피지에 꾹꾹 눌러쓴 문장들이었다. 그는 글이 곧 권력이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인프라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천재 선동가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완벽한 문장으로 로마를 매료시켰던 카이사르가, 왜 정작 자신이 죽기 직전 작성한 '최종 유언장'에는 로마 시민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기묘한 조항을 숨겨두었을까? 그리고 그 유언장이 광장에서 낭독된 순간, 로마는 왜 또다시 통제 불능의 불바다로 변했을까. 다음 글에서는 카이사르가 죽은 뒤 로마를 통째로 뒤흔든 '유언장 한 장의 나비효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 참고 기록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카이사르 편: 카이사르가 말을 타며 독서를 하고 서기들에게 동시에 구술을 시켰다는 기록, 알렉산드리아에서 원고를 들고 헤엄친 일화 및 그의 문필가적 재능이 상세히 묘사됨.
키케로 《브루투스(Brutus)》: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키케로가 카이사르 특유의 장식이 없는 담백하고 명료한 문체를 "조각상처럼 아름답다"고 평가한 대목이 기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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