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분할해 썼던 남자: 카이사르의 멀티태스킹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삶을 살았다. 갈리아에서 수십 개의 부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동시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로마의 정치 상황을 감시해야 했으며, 자신의 군대를 먹여 살릴 보급품 장부까지 일일이 챙겨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과로나 스트레스로 진작에 쓰러졌을 일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뇌를 여러 개로 쪼개어 쓰는 듯한 기이한 방식으로 이 엄청난 업무량을 받아쳐 냈다. 그의 집무실에서는 한 사람이 동시에 네 가지, 많게는 일곱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기괴한 광경이 매일같이 펼쳐졌다.
"너는 편지를 적고, 너는 장부를 적어라" 사방에서 사각거리는 펜 소리
카이사르가 권력의 정점에 올랐을 때, 그의 집무실을 방문한 이들은 눈을 의심했다. 카이사르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한 가지 문서에 집중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방 안에 네 명, 많게는 일곱 명의 비서(서기)를 동시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를 서성거리며 말을 뱉기 시작했다. 첫 번째 비서에게는 로마 원로원에 보낼 날카로운 정치 서한을 구술하고,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비서에게 몸을 돌려 군대 보급품을 체크하는 행정 문서를 받아 적게 했다. 이어서 세 번째 비서에게는 자신의 연인에게 보낼 달콤한 연애편지를 읊조렸다.
비서들의 갈대 펜이 양피지 위를 미친 듯이 사각거리며 달릴 때, 카이사르는 단 한 번도 흐름을 놓치거나 내용을 헷갈려하지 않았다. 각각의 비서들에게 완전히 다른 내용의 문장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 구술해 나갔다. 지독한 업무 중독자이자, 뇌의 회로를 완벽하게 분할해 쓸 줄 알았던 인간 컴퓨터였던 셈이다.
말등 위에서 보낸 수천 통의 편지, 그 모든 게 진짜 카이사르가 쓴 게 맞을까?
카이사르의 이 기묘한 멀티태스킹은 이동할 때 더 빛을 발했다. 그는 전장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도 양옆에 비서들을 태우고 끊임없이 말을 받아 적게 했다. 말을 타고 달릴 때조차 호위병 옆에 글을 쓸 수 있는 서기를 동행시켰을 정도다.
덕분에 카이사르는 로마 역사상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낸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동맹자들, 심지어 자신을 증오하는 정적들에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친필(구술) 편지를 보냈다.
받아보는 사람들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가 지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친 전장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로마 원로원의 아주 세세한 소문까지 다 파악하고 격려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초인적인 동시 처리 능력을 활용해,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로마 전체를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원격 통치 시스템'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카이사르는 비서 여러 명을 동시에 불러 완전히 다른 내용의 글을 동시에 받아 적게 했다.
전장으로 이동하는 마차나 말 위에서도 이 멀티태스킹 업무는 멈추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편지를 로마로 보내, 멀리서도 원로원의 정치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초인적인 동시 처리가 천재의 재능이었을까, 벼랑 끝에 몰린 자의 집착이었을까?
이 놀라운 능력을 단순히 "타고난 천재의 메커니즘"으로만 찬양하면 반쪽짜리 해석이다. 카이사르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일에 집착한 것은, 당시 그가 처했던 정치적 constraints(제약) 때문이었다.
로마 공화정 체제에서 카이사르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명문가 출신이긴 했지만 돈이 없었고, 원로원의 기득권 양반들은 그가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반역죄를 씌워 파멸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카이사르에게 정보의 지연이나 업무의 공백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싸우면서도 동시에 로마의 여론을 조작해야 했고, 동시에 법안을 검토해야 했다. 결국 그의 멀티태스킹은 화려한 천재성의 증거이기 전에, 적들에게 둘러싸인 외줄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뇌를 극한까지 쥐어짜 짜내야 했던 독재자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다.
카이사르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칼을 공중에 던지고 받아내는 곡예사처럼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혼자서 굴려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곡예사라도 쏟아지는 칼날을 평생 완벽하게 받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방의 정보를 동시다발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던 카이사르가, 왜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아침에는 자신을 죽이겠다는 암살자들의 명단이 적힌 결정적인 쪽지를 손에 쥐고서도 읽지 못했을까? 그 수많은 문서를 동시에 처리하던 남자가, 왜 자신의 목숨이 걸린 단 한 줄의 경고문을 읽지 못하고 원로원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갔을까.
📜 참고 기록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카이사르 편: 카이사르가 전장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며 독서를 하거나, 비서 여러 명을 앉혀두고 동시에 서로 다른 내용의 편지를 구술하여 받아 적게 했다는 멀티태스킹 일화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음.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로마 12인 황제전) 카이사르 편: 카이사르가 로마의 지인 및 정적들과 주고받은 방대한 편지 양과, 그의 독특한 서신 작성 습관 및 암호문 사용 일화가 기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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