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욕쟁이 보스' 정조가 날린 쇠담배대와 '호로자식' 편지
우리가 아는 '정조'라는 완벽한 박제
드라마나 교과서 속 정조(正祖)는 늘 정갈합니다. 단정하게 가다듬은 수염, 깊은 눈빛, 밤새 책을 읽느라 충혈된 눈. 그는 사도세자의 비극을 딛고 일어난 냉철한 군주이자, 규장각을 세워 학문을 장려한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군주로 기억됩니다.
완벽한 학자이자 성인(聖人)의 모습. 이것이 우리가 박제해 둔 정조의 이미지입니다.
밤마다 배달된 왕의 비밀 편지: "호로자식"
2009년, 학계를 발칵 뒤집은 유물이 공개됩니다. 정조가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299통이 세상에 나온 겁니다.
국왕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이 쏟아졌습니다.
"뒤주 속에 처넣을 수도 없고 참으로 안타깝다." "입에서 젖비린내를 풍기고 미련하여 고집통이인 게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왕은 신하들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의 '호로자식'에 해당하는 단어인 '호로자(胡虜子)' 나, '주리를 틀다'라는 뜻의 '도침(刀針)' 같은 험한 표현이 편지 곳곳에 등장합니다.
경연 장소에서 꼿꼿하게 도덕을 논하던 그 성군이 맞나 싶을 정도의 반전입니다.
욕설은 무능함이 아닌, 치밀한 '밀당'의 무기였다
왕의 거친 입담을 단순한 성격 파탄이나 스트레스 해소로 보면 오산입니다. 18세기 조선 조정은 걸핏하면 사직서를 던지고 낙향하는 노론 벽파 정객들과의 전쟁터였습니다.
정조는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공식 전장'인 대조전 외에, '비공식 통로'인 야간 비밀 편지를 택했습니다.
낮에는 조정에서 엄숙하게 꾸짖고, 밤에는 편지로 "내가 낮에 그렇게 말한 건 연출이니 상심하지 말라"며 다독이거나, 반대로 "이번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정조에게 비속어와 거친 표현은 신하의 기를 죽이고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밀당' 카드였습니다.
쇠담배대 소동과 심환지와의 은밀한 거래
정조의 거친 행동은 편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정조는 신하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이 애용하던 무거운 쇠담배대를 바닥에 쾅쾅 치며 위협했다고 합니다.
회의 중 의견이 맞지 않는 신하에게 "사내자리가 되어서 어찌 그리 소심한가"라며 대놓고 면박을 주는 일은 예사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정조에게 온갖 욕을 먹었던 심환지가 사실은 정조의 가장 긴밀한 정치적 파트너였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밤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일 조정에서 네가 이런 상소를 올리면, 내가 화내는 척하며 기각하겠다"는 식으로 정국을 시나리오 짜듯 대본 플레이를 했습니다.
욕설로 가득한 편지는 사실 두 사람만의 은밀한 신뢰의 증거였던 셈입니다.
성군과 욕쟁이 사이, 인간 이산의 생존법
후대의 역사가들은 종종 왕을 신화화합니다. 정조를 지나치게 완벽한 성인으로 그리거나, 반대로 말년에 독살당한 유약한 피해자로 몰아갔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비밀 편지가 보여주는 정조는 완벽한 성인 군주도, 무력한 군주도 아닙니다. 사방이 적이었던 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욕설을 무기 삼아 신하들을 쥐락펴락했던,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정치 동물'이었습니다.
그의 독설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기 위해 보스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정조가 이토록 거친 밀당으로 지켜내려 했던 탕평책. 그렇다면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밤새 편지를 보내며 관리했던 노론 벽파와 심환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세간의 소문대로 그들이 정조를 독살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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