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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정말 고양이를 무서워했을까? 역사 뒤에 숨겨진 가짜 뉴스

인터넷이나 교양 서적을 보다 보면 "천하를 호령한 나폴레옹이 고양이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라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한 번쯤 접해보셨을 겁니다. 일명 '고양이 공포증(Ailurophobia)' 일화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19세기판 '가짜 뉴스'이자 영국이 만들어낸 정교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이 흥미로운 루머의 실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널리 퍼진 루머: "황제가 고양이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야사나 백과사전 등에서 흔히 인용되는 가장 유명한 일화는 1809년 바그람 전투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나폴레옹의 시종이 밤중에 황제의 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칼을 휘두르는 소리를 듣고 급히 뛰어 들어갔다. 방 안에는 땀을 뻘뻘 흘리는 나폴레옹이 있었고, 커튼 뒤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황제는 고양이를 보고 사시나무 떨듯 떨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외에도 "고양이 무리가 그려진 그림만 봐도 기겁했다", "적국인 영국이 이를 알고 고양이 수백 마리를 전장에 풀 계획을 세웠다"는 식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살을 붙여가며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2. 1차 사료가 말하는 진실: 기록의 부재(Absence of Evidence) 역사학자들이 이 루머를 부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대 나폴레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의 기록에 '고양이'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기 때문입니다. 비서 부리엔(Bourrienne)의 회고록: 나폴레옹의 학창 시절부터 전성기까지 가장 측근에서 보좌했던 비서 루이 앙투안 드 부리엔의 방대한 회고록에는 황제의 식습관, 잠버릇, 기호품 등이 상세히 적혀 있지만 고양이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유배지 세인트헬레나의 기록: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그를 간호하고 대화를 받아 적은 라스 카즈(L...

시인과 대통령 — 로버트 프로스트와 케네디 취임식의 숨겨진 이야기

1961년 1월 20일, 워싱턴 D.C.는 매서운 한파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그날은 존 F. 케네디가 미합중국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취임식에는 한 가지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바로 86세의 노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단상에 올라 시를 낭독한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인이 시를 낭독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Photo by Joanna Kosinska on Unsplash

케네디가 프로스트를 초청한 이유

케네디는 취임식을 단순한 정치 행사가 아닌, 미국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당선 직후인 1960년 12월, 개인적으로 프로스트에게 편지를 보내 취임식 참석과 시 낭독을 부탁했습니다.

케네디가 프로스트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프로스트는 당시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이었고, 케네디 자신도 프로스트의 시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또한 케네디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국가의 공적 삶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프로스트의 초청은 그 신념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프로스트는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취임식 당일 — 예상치 못한 순간

프로스트는 취임식을 위해 새로운 시 "Dedication"을 써 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과 차가운 바람 속에서, 노시인의 눈은 원고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종이가 빛에 반사되어 글자가 보이지 않았고, 바람까지 원고를 흔들었습니다.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모자를 들어 햇빛을 가려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자 프로스트는 준비해 온 새 시 낭독을 포기하고, 대신 수십 년 전에 쓴 자신의 시 "The Gift Outright"를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습니다. 86세의 나이에 16행의 시를 막힘없이 외워 낭독한 것입니다. 그 순간 취임식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은 숨을 죽였습니다.

"The Gift Outright" — 시의 내용과 의미

"The Gift Outright"는 프로스트가 1942년에 처음 발표한 시입니다. 이 시는 미국이라는 땅과 그 땅에 살게 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노래합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The land was ours before we were the land's."
(그 땅은 우리 것이었다, 우리가 그 땅의 것이 되기 전에.)

이 시는 이어서 사람들이 점차 그 땅에 헌신하고, 스스로를 내어줌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그 땅의 사람들이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the gift outright"란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 즉 땅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을 뜻합니다.

케네디의 취임 연설 주제인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와 깊은 울림이 있는 시였습니다.

케네디의 요청 — 한 단어의 변경

케네디는 프로스트에게 낭독을 부탁하면서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시의 마지막 행에 있는 단어 하나를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시의 마지막 행은 "such as she was, such as she would become"(그녀가 그랬듯이, 그녀가 그렇게 될 것이듯이)으로 끝납니다. 케네디는 여기서 "would"를 "will"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단순한 가능성의 표현을 강한 확신으로 바꾼 것입니다. 미국의 미래에 대한 새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요청이었습니다.

프로스트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취임식 낭독 현장에서 프로스트는 이 변경 사실을 청중에게 직접 알렸습니다. 그는 낭독 도중에 말했습니다.

"Such as she would become, has become, and I — and for this occasion let me change that to — what she will become."
(그녀가 그렇게 될 것이었듯이, 그렇게 되어왔고, 그리고 나는 — 이 자리를 위해 이 표현을 바꾸겠습니다 — 그녀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프로스트가 낭독 도중 스스로 변경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프로스트가 자신의 원작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대통령의 요청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절충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발언을 들은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프로스트와 케네디, 그 후

취임식 이후 프로스트와 케네디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1962년, 케네디는 프로스트에게 미국 최고의 민간인 훈장인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수여했습니다. 그해 8월 프로스트는 소련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는 냉전 시대에 문화 외교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오래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1963년 1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했습니다.

취임식의 그 눈부신 햇살 아래, 86세의 노시인이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낭독 도중 잠시 멈추고 "이 자리를 위해 표현을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그 순간. 역사는 때로 이처럼 아름답고도 짧은 순간 속에 담겨 있습니다.

※ 이 글의 내용은 Academy of American Poets, JFK Presidential Library, New England Historical Society 등의 공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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