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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세계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흥미롭고 놀라운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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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The Great & Cleitus The Black: 완벽했던 정복자가 가장 신뢰하던 은인을 찌른 그날 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이미지는 무패의 신화를 쓴 완벽한 정복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혜로운 철인 군주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 아래 마케도니아 군대는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죠.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 정복자에게도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씻을 수 없는 흑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오늘 '세계사 비밀노트'에서는 기원전 328년 사마르칸트의 한 연회장에서 벌어진 참극, 대왕이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가장 친한 친구를 스스로의 손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던 클레이토스 살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봅니다.
1. 그라니코스 전투의 은인, 클레이토스
왕의 목숨을 구한 '검은 클레이토스'
알렉산더의 영광스러운 페르시아 정복전쟁의 첫 단추였던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 이 전투는 자칫 알렉산더의 제국이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고 끝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을 품고 있습니다.
난전 중 페르시아의 총독 스피트리다테스가 등 뒤에서 도끼를 높이 쳐들고 알렉산더의 머리를 내리치려던 찰나, 번개처럼 나타나 그의 팔을 통째로 잘라내며 왕의 목숨을 구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알렉산더의 유모 라니케의 동생이자, 기병대장인 클레이토스(Cleitus the Black)였습니다.
혈연과도 같은 유대: 클레이토스는 단순한 부하가 아니라 알렉산더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가족 같은 존재였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자부심: 그는 용맹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지닌 전형적인 마케도니아의 베테랑 장군이었습니다.
고대 역사가 아리아노스(Arrian)의 기록을 보면, 당시 마케도니아 군 내에서 클레이토스가 차지하는 입지와 알렉산더의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의 생명의 은인이자 가장 충직한 방패였습니다.
2. 페르시아와 깊어지는 갈등
마케도니아의 자존심 vs 새로운 제국의 융합
시간이 흘러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후, 두 사람의 관계에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알렉산더는 정복자의 모습을 버리고 페르시아의 관습을 수용하는 '동방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동방화 정책의 충돌: 페르시아식 의복을 입고, 왕의 발밑에 엎드려 절을 하는 '프로스키네시스(Proskynesis)' 의식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신격화에 대한 반발: 알렉산더가 자신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2세의 아들이 아닌, '암몬 신의 아들'이라 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자유롭고 평등한 전우애를 중시하던 마케도니아 노병들에게 큰 모욕으로 다가왔습니다. 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불만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가 조국 마케도니아의 전통을 버리고 오만한 폭군으로 변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3. 사마르칸트의 비극적인 연회
술잔 속에서 폭발한 분노와 엇나간 충언
기원전 328년, 마라칸다(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연회는 그동안 쌓여왔던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말았습니다. 포도주가 돌고 모두가 깊게 취한 가운데, 몇몇 아부꾼들이 최근 패배한 마케도니아 장군들을 조롱하고 알렉산더를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보다 위대하다며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클레이토스는 벌떡 일어나 마케도니아 장병들의 피와 희생을 모욕하지 말라며 일갈합니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알렉산더의 면전에 비수를 꽂습니다. "지금의 영광은 당신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인들의 피로 이룬 것이다!"
술과 분노에 이성을 잃은 알렉산더는 측근들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근위병의 창을 빼앗아 그대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클레이토스의 가슴에 꽂아버리고 맙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생명의 은인을 내려다보는 순간, 대왕의 눈을 가렸던 지독한 취기는 끔찍한 절망으로 바뀌고 맙니다.
보너스 역사 상식
피 묻은 창을 든 채 알렉산더는 그 자리에서 창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측근들이 그를 간신히 말려 천막으로 데려갔지만, 대왕은 사흘 밤낮을 식음도 전폐한 채 친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통곡했습니다. "나는 내 유모의 아들, 나를 길러준 자의 아들을 내 손으로 죽였구나!"
이때 무너진 알렉산더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학자 아낙사르코스의 지독한 궤변이었습니다. 그는 슬픔에 빠진 왕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알렉산더여, 어찌하여 필부처럼 울고 있는가? 신(제우스)의 옥좌 옆에 '정의(Dike)'가 앉아 있는 것은 왕이 하는 모든 행동은 곧 정의이며, 법이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이 달콤하고도 섬뜩한 철학자의 위로는 알렉산더의 죄책감을 덜어주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그가 더욱 독재적이고 신격화된 권력자로 변모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블로그 포스팅 요약 (독자들을 위한 한 줄 팁)
결국 클레이토스 살해 사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룬 리더라 할지라도 감정 통제에 실패하고 쓴소리를 해주는 비판적 조언을 수용하지 못할 때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입니다. 현대의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에서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나에게 직언을 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리더의 고립이자 파멸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사는 묵직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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